거미의 공간 인식과 거주 전략에서 영감을 받은 탈중심적 도시 철학 실험은, 인간 중심의 직선적 주거 개념을 넘어선다. 이 글은 거미를 매개로 도시 거주를 재사유하며, 관계 중심의 감각적 공생 모델을 제안한다.
거미의 거주 방식은 왜 도시의 미래를 예고하는가: 중심 없는 공간 개념의 전복
거미는 인간처럼 고정된 거주 공간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거미줄을 짓고, 때로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집’이나 ‘영구적인 소유 공간’이라는 개념과 충돌한다. 그러나 거미의 거주 전략은 단지 불안정하거나 임시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성, 감응성, 필요 기반의 최적화된 거주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오늘날의 도시 문제—주거난, 주택 불균형, 공간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암시한다. 현대 도시에서 주거는 소유와 분리되지 않는다. 아파트, 오피스텔, 고급 주택 등은 자산으로 간주되며, 정주(定住) 중심의 삶이 기본값으로 전제된다. 그러나 이 구조는 삶의 유연성과 생태적 다양성을 억압한다. 반면 거미는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거주지를 수정하고, 필요할 때마다 재설계한다. 예컨대 습도, 공기 흐름, 먹잇감의 밀도 등 감각적 조건이 변하면, 거미는 기존의 거미줄을 해체하고 새로운 구조물을 짓는다. 이는 환경의 ‘요청’에 반응하는 주거 전략이며, 주체-객체 구도가 아닌 상호 감응적 주거 모델이다. 이러한 접근은 도시 거주 철학의 방향을 탈중심적으로 바꾼다. 우리는 흔히 ‘도심’, ‘주거 중심지’, ‘핵심 상권’ 등 중심 개념에 익숙하지만, 거미는 공간에 위계를 두지 않는다. 벽 틈, 가로등 뒤, 공원 울타리 아래 등 인간이 ‘비거주지’로 간주하는 공간에서도 거미는 감각 기반의 거주를 시도한다. 이것은 “거주=합법화된 공간”이라는 이분법의 해체다. 즉, 탈중심적 거주란 ‘정해진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속에서 가장 생태적으로 최적화된 위치를 선택하는 것’이다. 거미줄은 또한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매개체다.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가능케 하며, 진동, 온도, 미세한 기류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인간이 주거 공간을 벽과 창으로 폐쇄하며 고립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반면, 거미는 공간을 열고, 연결하며, 주변 생태계의 일부로 통합시킨다. 이로 인해 **주거는 사적인 안식처이자 공적 생태 흐름의 노드(node)**가 된다. 이는 미래 도시 거주의 감각적 모델로 주목할 만하다. 결국 거미의 거주 전략은 정주성 대신 조응성, 고정성 대신 유연성, 사적 소유 대신 공적 연결성을 핵심으로 한다. 탈중심적 도시 거주는 이러한 비인간적 감각을 인간 도시 설계에 접목함으로써, 인간 중심의 공간 독점을 해체하고, 다양한 생명체와의 공생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철학적 실험이 된다.
도시 공간에서의 비인간적 '중심 해체' 실험: 거미줄은 어떻게 도시 위계를 무너뜨리는가
전통적인 도시 설계는 중심지와 주변부를 명확히 나누고, 주요 기능과 자원을 특정 구역에 집중시키는 위계 구조를 지닌다. 중심상업지구(CBD), 고급 주거지, 문화예술지구 등은 이 위계 질서의 대표적 산물이다. 그러나 거미줄은 이와 정반대다. 그것은 동등한 중요성을 지닌 접점들의 집합체로서, 어떤 지점도 중심이거나 배제되지 않는다. 이러한 거미줄의 구조는 도시 공간에 대한 사고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키는 힘을 가진다. 거미는 도시에서 소외된 장소를 선택적으로 거주지로 삼는다. 이는 곧 도시 내의 사각지대가 생명에게는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전환된 인식을 제시한다. 인간이 등한시한 폐건물, 다리 밑, 공공시설 후면은 오히려 거미에게는 최적의 감각 공간이며, 거주 전략의 중심지다. 이는 도시 공간의 ‘가치’가 기능이나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감응성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탈중심적 도시 실험은 이러한 거미의 공간 사용 방식을 도시 설계에 적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도시의 중심을 아예 설정하지 않고, 다양한 소규모 커뮤니티 거점을 망처럼 배치하며, 각 거점은 역할을 유동적으로 교환할 수 있다. 거미줄처럼 정보와 감각이 순환할 수 있는 열린 노드 기반 공간 구조는 도시의 ‘기능 집중 병목’을 해소하며, 비인간 생명체의 서식 공간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또한 거미줄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연결'이다. 도시 거주 역시 폐쇄적 개인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와 연결된 감각적 흐름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거미는 다른 생물의 활동을 감지하고, 주변 기류를 느끼며, 위협을 경고하거나 짝짓기 신호를 전달한다. 이는 주거 공간이 정보의 흐름과 상호 반응성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기존 도시의 방음, 단열, 분절 중심의 공간 설계는 이러한 생태적 흐름을 차단하며, 인간 고립화를 심화시킨다. 탈중심적 거주 철학은 여기에 반기를 든다. 거미줄은 특정한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변화하는 조건에 따라 스스로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인간 도시도 마찬가지로 고정된 중심과 위계를 버리고, 상황에 따라 변형되는 도시 생태 네트워크로 전환되어야 한다. 가령 기후 변화에 따라 중심 거점이 이동하거나, 주민 주도의 생태 프로젝트가 도시 기능을 일시적으로 대체하는 방식은 거미적 설계 철학과 닿아 있다. 궁극적으로 탈중심적 거주 실험은 인간만의 거주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도시 공간을 인간-비인간 공동 감각의 장으로 전환함으로써, 도시 그 자체가 다양한 생명체의 연결 지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그 상징이자 구조적 모델로서 거미줄의 탈위계성은 매우 중요한 철학적, 실천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감각 기반 도시 공동체의 가능성: 거미로부터 배우는 다종 공존 거주 모델
현대 도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감각의 위계화와 차단이다. 도시 소음은 배제되어야 할 것으로, 냄새는 통제되어야 할 것으로, 야생은 통합되지 못할 ‘외부자’로 규정된다. 그러나 거미는 감각의 흐름을 중심으로 도시를 살아간다. 이들의 주거 방식은 바로 감각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도시 거주 모델로 확장될 수 있다. 거미줄은 단지 생존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감각을 외부화하는 확장된 기관이다. 진동, 공기 흐름, 온도, 외부 생물의 동선을 모두 실시간으로 포착하며, 거미는 이를 바탕으로 거주 전략을 수정한다. 이처럼 감각적 피드백 시스템을 중심으로 거주 공간을 설계하는 사고방식은, 인간 도시 거주에 생태적 통합을 제안한다. 특히 거주 환경의 감각적 흐름이 인간뿐 아니라 다양한 존재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은, 현재 도시의 폐쇄성과 철저히 대조된다. 탈중심적 감각 공동체는 다양한 방향으로 구현 가능하다. 첫째,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를 비인간 존재도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 영역으로 확장한다. 거미는 인간이 듣지 못하는 초저주파나 고주파 영역에서 진동을 포착한다. 이런 방식으로 설계된 도시에서는 인간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도 함께 ‘듣고 반응하는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둘째, 도시 내 거미줄 기반 마이크로 센서 네트워크를 구축해,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정보(예: 공기 흐름, 습도, 생물 활동)를 수집하고 이를 도시 거주 환경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도시 주거는 고정된 벽 안의 시스템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개방된 실시간 거주 네트워크가 된다. 셋째, 거미를 포함한 다양한 도시 생물의 공간 사용 패턴을 시각화하고 도시 설계에 반영하는 실천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인간의 중심적 동선 외에도, 다양한 생명의 흐름이 고려된 입체적 도시 공간이 형성된다. 탈중심적 도시 거주 철학은 바로 이런 실천에서 실질적 가치를 발휘한다. 이러한 거미적 공동체 모델은 도시를 단순한 거주 단위가 아닌 감응성과 생태 다양성이 공존하는 감각의 생태계로 재정의한다. 주거는 소유가 아니라 관계, 감각, 리듬으로 구성되는 것. 이것이 바로 거미로부터 배울 수 있는 도시 거주 철학의 핵심이다. 도시가 더 이상 인간 중심의 건축물이 아니라, 다종 생명체의 감각적 공생 실험장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생태 도시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