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와 인간 사이의 공존 가능성을 윤리적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실제 도시 사례와 생태 윤리 관점에서의 전환 가능성, 그리고 기술과 예술을 통한 새로운 관계 맺기 실험을 소개합니다.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생태 윤리 속 거미의 재위치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자연의 중심, 혹은 정점에 있는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는 자연과 타 생명체를 단지 인간의 생존과 이익을 위한 도구로 간주하는 관점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거미와 같은 ‘미소 생물’들에 대한 무시, 혐오, 심지어 제거를 정당화하는 기반이 되어왔습니다. 인간 중심의 윤리 체계는 대개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보호하지만, 거미나 곤충류는 쉽게 '처리 대상'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그러나 생태 윤리학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반기를 듭니다. 모든 생명체는 고유한 존재 이유를 가지며, 인간과 동등한 권리와 가치가 있다는 비인간중심적 패러다임은, 거미라는 생명체를 단지 해충 퇴치자나 불쾌한 존재로 보는 시각을 전환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거미는 생태계에서 필수적인 포식자로서, 해충 개체 수 조절, 생물 다양성 유지, 생태적 균형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여러 생태 철학자들과 도시 생태 디자이너들은 ‘거미의 윤리적 위치’를 재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환경철학자 J. 베어드 캘리컷은 자연 자체에 내재된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간 외 생명체에게도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 관점은 인간과 거미의 공존을 기술적이거나 실용적인 차원이 아니라, 도덕적 책임의 문제로 전환시킵니다. 예를 들어, 일부 도시 공공정책은 해충 방제 정책에서 거미를 예외 대상으로 명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거미를 단순히 제거의 대상이 아닌 ‘도시 생물 군집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도시 생태계에서 거미는 농약 없이 해충을 조절할 수 있는 자연 방제자이며, 이들의 서식은 생태 건강성의 지표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거미의 존재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것은 단지 생물학적 유익 때문이 아니라, 생태계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주거와 생활 방식에 대한 재고를 요구합니다. 콘크리트 중심의 도시 설계는 거미를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의 서식처를 제거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일부 도시에서는 생물다양성 보호구역을 거미 서식지 중심으로 지정하고, 시민들에게 거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교육하는 ‘생물 시민성’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생태적 공존이 ‘윤리’의 문제이자 ‘실천’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거미는 이제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아닌,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비인간 이웃’으로서의 위치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윤리적 전환은 단지 생명존중의 차원을 넘어, 생태계 전체의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 전제가 되고 있으며, 인간이라는 종 또한 생태계 구성원 중 하나임을 자각하는 철학적 전환점이 되고 있습니다.
도시 공간에서의 공존 실험: 실제 적용 사례와 정책의 변화
거미와 인간의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윤리적 전환은 이론적 담론을 넘어서 실제 도시 공간에서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도시 생태계 내 생물 다양성 복원과 공공정책의 변화는 거미의 존재를 보호하고 공존을 도모하는 구체적인 시도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도시설계, 조경, 환경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몇몇 도시들은 전향적인 시범 프로그램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의 도시 생물 다양성 보전 계획입니다. 프라이부르크는 생물 서식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도시 재생 전략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 전략 안에는 거미를 포함한 절지동물 서식지 보존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도시는 공원 조성 시 단순히 인간 중심의 미적 기준이 아니라, 거미가 서식하기 적합한 초목 밀도, 곤충 다양성, 흙의 통기성 등을 반영하여 조경 계획을 세웁니다. 거미를 위한 도시 조경이라는 개념은 일견 생소하지만, 이는 도시 생태계의 회복력을 높이는 기반으로 작용합니다. 또 다른 사례는 일본 도쿄의 일부 초등학교에서 시행 중인 ‘도시 생물 감수성 교육’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교실과 운동장, 화단 등에서 발견되는 거미들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과 함께 관찰하고 기록하며 생태 일지를 쓰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실천은 단지 생물학적 지식 전달을 넘어, 생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생명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을 유도합니다. 거미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교육은 핵심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한 영국 브라이턴에서는 주택 단지 설계에 있어 거미 및 소형 곤충의 통로를 고려한 건축 모델이 제안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외벽의 일정 구간에 작은 공간을 비워 거미의 거주 공간을 마련하거나, 조명 환경을 조절하여 야행성 거미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설계하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생물 배려를 넘어, 인간의 건축이 다른 생물 종과 공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새로운 설계 철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도시민의 인식 전환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거미를 ‘유익한 생물’이라는 실용주의적 관점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수용하는 태도는 윤리적 전환의 핵심입니다. 도시 환경에서 거미가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시민이 그것을 불편해하지 않는 심리적 수용성이 형성될 때, 진정한 공존이 가능해집니다. 이처럼 거미와 인간의 공존은 단지 생태학적 기술이나 정책 개선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공간 인식, 생명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 일상 속에서의 실천을 통해 구현되는 지속적 전환의 과정이며, 다양한 도시들이 이를 실험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과 기술을 통한 윤리적 관계 재설계 실험
거미와 인간의 윤리적 공존을 단지 정책이나 철학적 담론의 차원에서 논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과 기술을 매개로 새로운 감각적 관계를 재설계하려는 실험들이 전 세계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공감 능력을 자극하고, 거미에 대한 인간의 감정적 거리감을 좁히며, 생명체 간의 상호 이해 가능성을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냅니다. 우선 예술의 영역에서는 거미를 단순한 생물학적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예술적 주체로 삼는 전시나 퍼포먼스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설치미술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대형 조각 작품 Maman은 거미를 모성, 보호, 생명의 상징으로 재해석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거미에 대한 감정적 재구성을 유도합니다. 관람객들은 수 미터 크기의 거대한 거미 조각 아래를 통과하며 기존의 공포감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적, 심리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기술 예술 분야에서는 생물 감응형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간과 거미 간의 직접적인 ‘감각 교류’가 실험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큐슈대학교의 연구진은 거미줄의 진동 패턴을 감지해 이를 사운드로 변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람객은 이 소리를 듣고 거미가 환경을 어떻게 감지하고 반응하는지를 체험함으로써, 비인간 존재의 지각 세계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 중심의 지각 경험을 넘어서려는 윤리적 감각 실험이며, 공존에 대한 감성적 기반을 마련해 줍니다. 또한, 디지털 기술과 AI를 활용해 거미의 움직임과 행동을 가상현실 공간에 시각화하는 프로젝트들도 공존 윤리의 교육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이 시스템을 통해 거미의 시야, 반응 속도, 공간 인식을 체험하면, 단순한 관찰을 넘어 공감과 이해를 통해 생명에 대한 윤리적 관점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술-기술 융합 시도는 거미를 인간의 적대적 타자로 상정하는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공존 가능한 이웃으로 전환할 수 있는 문화적 감각을 확장하는 데 기여합니다. 이는 단지 감성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정책과 일상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거미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윤리적 전환은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예술과 기술은 그 중심에서 인간의 감각, 태도, 인식을 변화시키는 실험적 도구가 됩니다. 이들은 우리가 거미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공존을 구체화하는 상상력의 장을 넓히며, 나아가 미래 생태 사회의 윤리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