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감각 세계에서 본 인간 도시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관계망으로 짜인 비선형 구조다. 이 글은 거미의 생존 전략과 공간 인식 방식에서 착안해 인간 도시의 위계 구조를 해체하고, 더 생태적이고 평등한 도시 모델을 상상하는 시도를 담고 있다.
거미의 공간 감각은 선형이 아니다: 인간 도시 구조의 비정상성 재인식
거미는 세상을 눈으로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종은 시력이 매우 제한적이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진동, 압력, 공기 흐름 등 비가시적 요소를 통해 환경을 인식한다. 특히 거미줄은 단순한 사냥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읽는 감각의 연장이다. 각 줄마다 특정 주파수 대역의 진동이 전달되며, 거미는 이를 통해 공간에 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는 인간의 선형적 공간 감각—예: 위계적으로 나뉜 도로, 건물, 중심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다. 거미는 중심과 주변, 위아래, 안팎의 구분 없이 자신의 공간을 하나의 연결된 망으로 인식한다. 거미줄은 전통적 도시 공간이 가진 '구획화된 질서'를 거부하며, 관계 기반의 생존 시스템을 제시한다. 이때의 '공간'은 거리나 면적이 아니라, 진동의 강도, 반복성, 방향성 등 질적 정보에 따라 정의된다. 이 점에서 인간이 설정한 도시의 위계 구조—예컨대 시청 앞 광장이 더 ‘중요한 장소’라는 관념—은 거미의 세계관에서는 무의미하다. 도시를 계층화하는 인간의 사고는 주로 효율성과 통제, 경제 논리를 중심으로 한다. 중심 업무 지구, 고급 주거지, 배후 상업지 같은 공간 개념은 기능과 자본에 따라 구획된 위계적 구조다. 그러나 거미는 사냥감을 기다리거나, 위험을 회피하거나, 짝을 찾는 등 모든 활동을 거미줄의 동등한 리듬 속에서 수행한다. 어느 한 지점도 본질적으로 더 중요하거나 권력이 집중된 장소가 아니다. 이것은 거미의 세계가 탈중심적, 탈위계적, 생태적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 도시 구조에 대한 급진적 재사유를 요구한다. 고층 빌딩, 중심 상업지구, 배타적 커뮤니티 공간은 인간의 지배 논리에 따라 구축된 위계 구조다. 반면, 거미는 모든 지점이 의미를 갖는 다중 네트워크적 공간감각을 실현한다. 이러한 망 구조는 단순히 기술적 연결망이 아니라, 감각적 상호작용과 생존 기반의 동등한 관계가 얽힌 비선형적 공동체다. 따라서 우리는 거미의 공간 인식 방식에서 ‘도시를 재설계하는 상상력’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효율, 기능, 권력이 아닌 공존, 감응, 감각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이러한 접근은 특히 기후위기와 도시 생물다양성 붕괴에 직면한 오늘날의 도시계획에 시급히 요구되는 비인간 중심 도시 디자인으로의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
위계 대신 '감응하는 존재들': 거미의 생존 전략이 제시하는 공존 모델
거미는 포식자이자 동시에 먹잇감이다. 이들은 생태계에서 특정한 ‘지위’를 고정적으로 갖지 않는다. 자신보다 작은 곤충을 사냥하지만, 동시에 새, 말벌, 개미에게 쉽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이러한 생존 방식은 인간이 구성해온 도시 위계—즉 중심-주변, 주체-객체, 관리자-소비자 같은 고정된 역할 구조—와는 전혀 다르다. 거미는 위계적 관계 대신 감응적 관계 속에서 생존한다. 이러한 감응적 존재 방식은 도시에 거주하는 다양한 생명체—인간, 동물, 식물, 미생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도심의 중심부를 '인간 중심'으로 계획하고, 나머지 생물들은 통제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왔다. 이는 건물 내 곤충 퇴치 시스템, 조경 설계, 야간 조명 체계 등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거미는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구석, 벽 틈,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감각망을 구축한다. 인간이 '하찮다'고 여긴 장소들이, 거미에게는 생존의 핵심 공간이다. 이는 도시공간의 가치 구조를 정반대로 뒤집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대형 광장이나 쇼핑몰 같은 중심 구조물이 아니라, 외면된 이면도로, 쓰레기장 근처의 담벼락, 버려진 창고 안이 생물의 생존 중심지일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은 생물에게는 감각의 중심이며, 감응과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는 생태적 중심지다. 거미는 바로 그 공간을 중심으로 도시를 조직한다. 따라서 **‘비인간 생물의 시선에서 재구성된 도시 지도’**는 기존의 위계 도시 설계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거미의 행동에서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핵심은 '기다림'이라는 생존 전략이다. 거미는 적극적으로 공격하거나 이동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의 네트워크가 환경과 상호작용하기를 기다린다. 이 점에서 거미는 일종의 '비폭력적 감응자'이며, 생태 시스템과의 지속적 소통자라 할 수 있다. 인간 사회가 이윤 추구와 속도 중심의 도시 개발로 달려가는 동안, 거미는 정지와 경청, 느림의 전략으로 도시를 살아간다. 이러한 감응 모델은 인간 도시의 위계적 질서를 전복시키는 실천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관리자와 피관리자, 중심과 주변, 생산자와 소비자, 인간과 비인간 같은 이분법적 위계를 해체하고, 서로의 존재에 감응하는 비계층적 도시 윤리를 제시한다. 이러한 비인간 생물의 존재 방식은 단순히 도시 설계의 참고 사항이 아니라, 도시를 살아가는 윤리적 기반이 될 수 있다.
거미적 도시 설계: 위계 해체를 향한 생태적 인프라 상상
만약 도시가 거미줄처럼 설계된다면 어떨까?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시 구조의 전환을 상상하게 한다. 거미줄은 특정 중심을 향해 뻗는 것이 아니라, 다방향적으로 확장되며, 모든 지점이 연결된 네트워크다. 도시도 이런 거미줄 구조를 모방할 수 있다면, 교통, 정보, 주거, 생물 다양성의 흐름이 위계 없이 평등하게 분포된 공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도시 인프라는 중심부에 집중된 자원과 기능이 외곽으로 갈수록 희소해지는 구조를 갖는다. 대중교통 노선, 병원, 교육 기관, 문화시설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거미줄 기반의 도시 모델은 각 노드가 서로 상호작용 가능한 등가의 중심이 되도록 설계한다. 이는 다중 중심성(polynodal structure)을 가진 탈중심적 도시 모델이며, 생태적으로는 생물 서식처를 촘촘히 연결해 생물 다양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구조다. 이러한 모델은 실제로 유럽의 일부 생태도시 계획에서 실험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생태 인프라로 보고, 고속도로 대신 생물 이동 통로를 우선 설계하거나, 중앙광장이 아닌 분산된 커뮤니티 거점을 중심으로 도시 기능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는 거미의 세계관을 반영한 공간 정치학이라 할 수 있다. 거미줄은 또한 재구성 가능한 구조다. 바람, 비, 외부의 침입에 따라 거미는 자신의 거미줄을 해체하고 다시 짓는다. 이 점은 인간 도시가 지닌 '고정불변성'에 대한 대안이 된다. 오늘날의 도시는 구조적으로 너무 경직되어 있어, 위기 상황이나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거미의 유기적 도시 설계는 가변적이고 적응 가능한 도시 인프라, 즉 지속 가능성을 내장한 설계를 가능케 한다. 마지막으로 거미줄은 타자의 침입을 배제하는 구조가 아니라, 타자와의 접촉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감각망이다. 이것은 폐쇄된 울타리식 도시가 아니라 열린 생태 도시로서의 비전을 제공한다. 인간 중심의 배타적 공간 배분이 아닌, 다양한 생명체가 감응하고 협조하는 공간 구조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거미의 세계관은 인간 도시의 위계 구조를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도시를 상상하는 구조적·윤리적·감각적 실험이다. 도시가 살아있는 존재, 감각을 공유하는 유기체, 그리고 다종 공동체를 품는 그물망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거미에게서 배우는 진정한 도시 공생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