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청소하고 정리하는 집 안에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자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중 가장 상징적인 존재가 바로 거미다. 거미는 인간의 주거 공간에서 의도적으로 들이지 않았지만, 완전히 배제되지도 않은 마지막 자연 개입자로 남아 있다. 이 글은 왜 거미만이 인간의 통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는지, 인간의 생활 환경이 어떻게 거미에게 선택받는 공간이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실내 생태계의 균형을 거미라는 존재를 통해 살펴본다. 단순한 해충 이야기가 아닌, 인간과 자연의 경계에서 거미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생활·심리·환경 관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다.

완전히 통제된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생명
현대의 주거 공간은 더 이상 자연이 스며들 틈이 없는 장소처럼 보인다. 우리는 방충망으로 외부를 차단하고, 살균 기능이 포함된 세제를 사용하며, 공기청정기로 보이지 않는 입자까지 제거한다. 집은 점점 ‘살기 좋은 공간’이 아니라 ‘완벽하게 관리되는 공간’으로 진화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생명체는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한때 집 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개미, 바퀴벌레, 파리 같은 존재들은 이제 ‘발견 즉시 제거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완벽한 통제 시스템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생명이 있다. 바로 거미다. 거미는 인간이 원해서 들인 생명체가 아니다. 반려동물도 아니고, 실내 식물처럼 의도적으로 배치된 존재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집에서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발견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결과에 가깝다. 인간이 만들어낸 주거 환경이 완전히 인공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미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거 공간이 자연을 제거하는 방식은 매우 선택적이다. 인간에게 직접적인 불편이나 위협을 주는 존재는 즉각 배제된다. 바퀴벌레는 위생 문제로, 모기는 질병과 수면 방해로, 개미는 침입자로 인식된다. 이들은 ‘눈에 띄는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개입한다. 반면 거미는 다르다. 거미는 조용하고, 은밀하며, 인간의 생활 동선에서 비껴난 위치를 선택한다. 천장 모서리, 커튼 뒤, 베란다 상단처럼 인간의 시선이 오래 머물지 않는 공간을 점유한다. 이 선택 자체가 거미를 생존 가능하게 만든 첫 번째 요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거미가 인간의 통제 시스템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미는 음식물을 탐하지 않고, 쓰레기를 뒤지지 않으며,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거의 주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 안에 거미가 있어도 며칠씩 인식하지 못한다. 이 ‘비가시성’은 현대 주거 환경에서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거미는 바로 이 틈새에 존재한다. 흥미로운 점은 살충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거미의 존재가 더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살충제와 해충 퇴치 시스템은 먹이사슬의 하단에 있는 작은 곤충들을 빠르게 제거한다. 그런데 이로 인해 생기는 결과는 역설적이다. 거미의 주요 먹이가 되는 작은 날벌레들이 줄어들면서, 살아남은 거미는 더 이상 집 안을 활발히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움직임이 줄어든 거미는 더 발견되지 않으며, 그만큼 제거 대상에서도 멀어진다. 인간의 통제는 거미를 몰아내기보다 오히려 ‘조용히 정착하게 만드는 환경’을 만들어낸 셈이다. 주거 공간의 밀폐 구조 또한 거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현대 아파트와 주택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한다. 환기는 통제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창문은 제한된 시간에만 열린다. 이 구조 속에서 한 번 내부로 들어온 생명체는 쉽게 빠져나가지도, 새롭게 대량 유입되지도 않는다. 거미는 이 구조를 정확히 활용한다. 대량 번식이 아닌 소수 정착 전략을 택함으로써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 선을 유지한다. 이는 ‘완전히 제거되지도, 적극적으로 관리되지도 않는 존재’라는 독특한 위치를 만들어낸다. 이 지점에서 거미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인간 주거 공간의 성격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우리가 아무리 집을 인공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해도, 그 안에는 여전히 자연이 개입할 수 있는 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거미는 그 틈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가장 오래 유지하는 생명체다. 그래서 거미는 주거 공간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만든 공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에 가깝다. 완전히 통제된 공간이라고 믿는 집 안에 거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간의 삶이 여전히 자연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거미는 인간에게 도전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거미는 인간 주거 공간에 남겨진 마지막 자연 개입자라 불릴 자격이 있다.
거미는 왜 인간의 생활 패턴을 닮아가는가
집 안에서 거미를 발견하는 위치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천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창문 상단, 커튼 뒤편, 베란다 구석. 이 장소들은 우연히 선택된 것이 아니다. 거미는 인간의 주거 공간을 단순한 ‘실내’로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생활 패턴이 만들어낸 흐름과 반복을 읽어내고, 그 사이의 빈틈을 거미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거미의 위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집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인간의 생활 동선은 집 안에 명확한 중심과 주변을 만든다. 거실 바닥, 식탁 주변, 침대 근처처럼 자주 사용되는 공간은 항상 정리와 관리의 대상이 된다. 반면 천장이나 상단 구조물, 시선이 닿지 않는 모서리는 관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거미는 바로 이 ‘관리되지 않는 영역’을 정확히 인식한다. 인간이 반복적으로 무시하는 공간이 곧 거미에게는 가장 안정적인 거점이 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거미가 인간의 움직임뿐 아니라 ‘멈춤’을 감지한다는 사실이다. 집 안에서 공기가 거의 흐르지 않는 지점, 청소 도구가 잘 닿지 않는 각도, 손이 쉽게 닿지 않는 높이는 거미에게 이상적인 환경이다. 이는 거미가 단순히 어두운 곳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반복적인 인간의 행동 속에서 “이 공간은 안전하다”라는 신호를 축적한 결과다. 다시 말해 거미는 집의 구조보다 인간의 습관을 더 정확히 읽는다. 빛 또한 중요한 요소다. 많은 사람들은 거미가 어두운 곳만 선호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직접적인 빛’을 피할 뿐 완전한 어둠을 고집하지 않는다. 창가 상단이나 베란다 근처에서 거미가 자주 발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곳은 낮에는 밝지만, 빛이 직접적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해가 지면 실내 조명이 켜지고, 그 빛에 이끌린 작은 곤충들이 모인다. 거미는 이 패턴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인간이 매일 반복하는 조명 사용 습관이 거미에게는 안정적인 먹이 공급 신호가 되는 셈이다. 온도와 습도 역시 인간의 생활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에어컨, 난방, 가습기, 환기 시간은 집마다 다르지만 일정한 리듬을 가진다. 거미는 이 리듬에 적응한다. 하루 중 온도가 급격히 변하지 않는 지점, 습도가 갑자기 낮아지지 않는 위치를 선택해 거점을 만든다. 특히 베란다와 실내가 맞닿는 경계 지점은 거미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곳은 외부 환경과 내부 환경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장소로, 계절 변화에 따라 미세한 신호가 가장 먼저 감지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거미는 인간의 ‘청결 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공간을 평가한다. 인간에게 깨끗한 집은 먼지와 흔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거미에게 중요한 것은 먼지가 아니라 안정성이다. 공기가 자주 뒤섞이지 않고, 물리적 충격이 적으며, 일정한 구조를 유지하는 곳이 좋은 공간이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청소를 해도 거미가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청소는 바닥과 눈높이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거미의 영역은 그 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집마다 거미의 존재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어떤 집에서는 거미줄이 거의 보이지 않고, 어떤 집에서는 비교적 쉽게 발견된다. 이는 단순히 집의 노후도나 청결 상태 때문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의 생활 리듬, 조명의 사용 빈도, 창문 개방 습관, 밤 시간대 활동 여부 등이 모두 거미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밤늦게까지 불을 켜두는 집일수록 거미의 활동 범위는 창가와 조명 근처로 확장된다. 반대로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집에서는 거미가 더 높은 곳에 머무른다. 이처럼 거미는 인간의 집을 침범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생활 패턴을 반영하는 거울에 가깝다. 거미가 있는 위치를 관찰하면, 그 집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드러난다. 자주 머무는 공간, 비워두는 공간, 관리하는 영역과 방치된 영역이 고스란히 거미의 동선에 남는다. 그래서 거미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인간 주거 공간의 사용 설명서 같은 존재가 된다. 결국 거미가 인간의 생활 패턴을 닮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공간이 생각보다 훨씬 생태적으로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은 집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통제는 선택적이고 불완전하다. 거미는 그 틈을 읽고, 적응하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 이 과정은 침입이 아니라 공존에 가깝다.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거미는 이미 우리의 삶의 리듬 속에 들어와 있다.
우리가 거미를 제거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미를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거미를 발견했을 때 놀라고, 불쾌함을 느끼며, 가능하다면 보지 않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거미를 발견한 순간 즉각적으로 제거하지 않는다. 살충제를 찾기보다 “그냥 저기 있네”라고 넘기거나, 시간이 지나 사라지길 기대한다. 해충이라면 바로 제거했을 행동을 거미에게는 유독 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순적인 태도 속에는 인간의 공간 인식과 생명에 대한 무의식적인 기준이 숨어 있다. 먼저 인간은 위협의 기준을 매우 감각적으로 판단한다. 물릴 가능성, 번식 속도, 위생 문제처럼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대상은 강한 혐오와 즉각적인 제거 행동으로 이어진다. 모기나 바퀴벌레가 대표적이다. 반면 거미는 외형적으로 불쾌할 수는 있지만, 일상에서 실제 피해를 준 경험이 거의 없다. 물릴 가능성도 낮고, 눈에 띄는 피해 사례도 드물다. 이 ‘피해 경험의 부재’는 거미를 위협 목록의 최하단으로 밀어낸다. 싫지만 급하지 않은 존재, 바로 그 위치가 거미의 자리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거미의 행동 방식이다. 거미는 인간을 피한다.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으며, 음식 위로 올라오지도 않는다. 인간의 공간을 침범하기보다는 가장자리에서 머문다. 이 태도는 인간에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저 선만 넘지 않으면 괜찮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형성된다. 인간은 자신의 영역을 명확히 침범하지 않는 존재에게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거미는 이 경계를 정확히 지킨다. 심리적으로 보면, 거미에 대한 혐오는 공포라기보다는 불편함에 가깝다. 공포는 즉각적인 행동을 유발하지만, 불편함은 회피로 이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미를 보면 소리를 지르기보다 시선을 돌리고, 그 공간을 잠시 피한다. 제거보다는 거리 두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갈등을 회피할 때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 패턴과 닮아 있다. 거미는 그만큼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피하면 되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여기에 문화적 요소도 작용한다. 거미는 오래전부터 해충을 잡는 존재로 알려져 왔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어렴풋하게나마 “거미가 있으면 다른 벌레가 적다”는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 이 지식은 명확하지 않아도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거미를 제거하는 순간, 집 안의 균형을 깨뜨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인식이 작동한다. 그래서 살충제를 들고도 망설이게 된다. 이 망설임은 합리적 계산이라기보다,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거미를 대하는 방식이 집 안의 다른 ‘미시적 자연 요소’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창틀에 남은 먼지, 베란다 구석의 이끼, 화분에 생긴 작은 벌레들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모든 자연 흔적을 없애는 데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집이 너무 인공적으로 느껴질 때 생기는 불안감, 그 공백을 메워주는 것이 이런 작은 자연의 흔적이다. 거미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존재일 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책임의 문제다. 거미를 죽이는 행위는 생각보다 명확한 행위다. 치우거나 청소하는 것과 달리, 생명을 직접 제거했다는 감각이 남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 감각을 부담스러워한다.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진다. 아이 앞에서 거미를 죽이는 장면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냥 두자”라는 선택이 더 쉬워진다. 이 선택은 도덕적 판단이라기보다는 감정 노동을 줄이기 위한 행동에 가깝다. 결국 우리가 거미를 제거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미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거미는 인간의 기준에서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조용하며, 너무 경계에 머무는 존재다. 제거해야 할 만큼 위험하지 않고, 함께 살자고 할 만큼 친근하지도 않다. 이 애매한 위치가 거미를 살아남게 만든다. 인간은 모든 것을 명확히 정의할 수 없을 때, 그냥 두는 선택을 한다. 거미는 그 선택의 결과다. 이렇게 보면 거미는 인간 주거 공간에 남겨진 마지막 자연 개입자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인간은 집을 통해 자연을 통제하려 했지만,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조용히 증명하는 존재가 거미다. 우리가 거미를 싫어하면서도 끝내 공존을 선택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존재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마지막 연결 고리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ㅇ